고산은 조선조 역사에서 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를 살아갔다. 곧 임·병 양란을 직접 겪었고 권력 내부의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붕당기를 통과했던 것이다. 그의 삶 역시 그러한 역사의 와중에서 때로는 권력의 정점에 근접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쓰라린 패배를 감수해야 했다.
그는 젊어서는 당대의 권
1. 고산의 생애와 그의 시대 - 붕당정치와 호란의 정치적 격변기 17세기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1587년(선조20) 6월 22일 지금의 대학로 자리인 한성의 연화방(蓮花坊)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해남(海南)이고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이다. 그의 가계(家系)중에 주목
윤선도의 생애에는 몇 가지 특이한 사항들이 발견되었다. 어린 시절 생부모(生父母)를 떠나 양부모(養父母) 밑에서 지낸 것, ≪소학(小學)≫을 중시한 것, <병진소(丙辰疏)>를 올려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을 논박하다가 경원(慶源)으로 유배간 것, 인평대군(麟坪大君)과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왕자
론적 관점에서의 분류와 시조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함축적으로 드러내 줄 수 있는 계층적 관점에서의 분류가 그것이다. 전자는 언어예술로서 지닌 시조의 미학을 가장 집약적으로 담지하고 있는 것이 시적 형식이라는 점에서 형식적 분류가 중심이 될 것이고, 후자는 문화적 담론으로서 지닌 시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