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 사이를 구별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고 종종 비판받아 왔다. 이러한 구별을 하기 위해서는 쾌락의 질이 높거나 낮다고 말하게 해주는 어떤 특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특성은 그 자체의 쾌락일 수 없다. 보다 높은 쾌락을 욕구할 때 우리는 쾌락과 다른 어떤 것, 즉 특성을 욕구한다. 어떤 사람이
쾌락의 감소를 낳는 행위이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흔히 양적 공리주의라고 불린다. 벤담은 쾌락과 고통이야말로 본래적 선의 유일한 척도라고 생각한 벤담은 쾌락의 성질에 대하여 쾌락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측정이 가능한 양적인 특성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쾌락을 추구하고, 또
벤담의 최대 행복 원칙에의 두 가지 반박, 즉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권리에 비중을 두지 않았다는 것과 모든 도덕적 문제를 쾌락과 고통이라는 하나의 저울로 측정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데에 있다. 이에 밀은 계산적인 원칙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원칙으로 공리주의를 다듬으려 하였다. 밀은 벤담과
벤담이 말한 순수한 쾌락주의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만약 이처럼 쾌락이 양으로 등급이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질로서 등급이 매겨진다면 쾌락은 더 이상 우리의 행동의 선택을 결정하는 표준이나 기준이 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밀의 반성에도 불구하고 공리주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
벤담은 살던 시대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만행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기에 벤담은 ""그 어떤 것도 반자역적이라거나 탈 자연적이라 말할 수 없다" 공리주의 철학의 이름으로 동성애 무죄화에 대해 성찰하였다. 그는 동성애가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을 주지 않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쾌락을 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