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유학의 연원과 전개
-고대 유교문화의 태동과 형성
유교문화는 고대 중국의 하․은․주 라는 삼대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삼대문화 이전에도 요임금을 대표로 하는 당 왕조와 순임금을 대표로 하는 우 왕조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서경書經』에 기록되어 있다. 요와 순은 고대
유학의 유입
조선조의 선비들이 숭상했던 유학은 공맹(孔孟)의 고전유학이라기 보다는 주자에 의해서 새롭게 정립된 신유학(新儒學), 즉 성리학(性理學)이었으니 유학의 성 이해를 논함에 있어서도 이 둘을 구분해서 이해해야 될 것이다. 신유학은 공맹의 가르침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데 가장
유학 사상은 한사군이 설치되면서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졌다고 주장하는 설이다.
(다) 김충열의 설 : 한반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던 연나라와의 빈번한 접촉을 바탕으로 기원전 4세기 무렵에 유학이 전해졌다고 보는 견해이다.
(2) 유학의 수용
(가) 삼국의 수용과정
삼국 시대에는 원시 유학인 공맹
1, 요약
연암(燕巖) 박지원은 우리 고전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문장가로 손꼽히는 18세기 조선의 문인이자 유학자다. 박지원(朴趾源, 1737년 3월 5일(음력 2월 5일)은 지돈녕부사를 지낸 노론중진 장간공 박필균의 손자이며, 열상외사(洌上外史) 박사유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조부와 아버지 모두 노론
서론
다산은 목민심서 서문에서 “군자의 학문은 ‘수신(修身)’이 그 절반에 해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목민(牧民)’이다”라고 했다. ‘목민’이란 말은 원래 중국의 고전 관자(管子) 제1편 「목민」에 서 유래했다. 목민이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목민(牧 民)에서 목(牧)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