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은 374년 고구려고국양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384년, 소수림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고국양왕이 즉위하였으며 그로부터 2년 뒤, 386년에는 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5년 뒤인 391년, 아버지 고국양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당시 고구려는 백제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전대의 왕인 고국원왕
설립하였으며, 율령을 반포하여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고국양왕 때에 신라와의 외교관계 수립하여 전략적 외교술을 펼치게 되었다.
이때 북방의 국제 정세 역시 후연이 탁발씨와의 전쟁으로 인해 고구려에게 등 안시 하게
되는 정세 속에 남으로는 신라를 통해 백제와의 마찰을 견제하게 된다.
광개토대왕 후연으로 공격을 받음(400년)
404년 후연 공격 중 백제와 왜의 연합군 공격으로, 잠시 수세
407년 후연을 견제하고 백제를 초토화, 후연이 분열
411년 광개토대왕 후연을 정복
26대 태왕, 영양왕. 수나라 30만 대군 양성 소식에 선공, 수나라 고구려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전염병과 해전에
하겠다.
주목되는 것은 고구려에 있어 주 정복대상은 백제와 신라 및 동부여였으며, 왜와 비려 등은 부수적인 대상으로 단지 토멸의 대상일 뿐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고구려에 있어 백제와 신라 및 동부여가 왜, 비려와는 성격이 다른 동일 세력권 내의 민족집단으로 인식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구려 제 18대 고국양왕의 아들로 재위기간은 392년 5월에 즉위하여 재위 22년 째 되던 413년 10월까지이다. 삼국사기에서 “나면서부터 체격이 뛰어나게 크고, 활달한 뜻을 가졌다.” 라고 광개토왕을 묘사하고 있다. 광개토왕은 백제 진사왕이 “담덕(광개토대왕)이 용병에 능하다.”는 말을 듣고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