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 대왕 후연을 정복
26대 태왕, 영양왕. 수나라 30만 대군 양성 소식에 선공, 수나라고구려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전염병과 해전에서 패배, 많은 물자와 병기 노획으로 수나라는 화친을 함(598년)
612년 수 양제의 1차 침입 (살수대첩) 수나라 패배
613년 수 양제의 2차 침입 (요동성 전투) 수성전
후연의 성들을 공격하였다. 후연은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져 멸망하고, 북연이 건국되었다.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은 백제의 개로왕을 죽이고 지금의 경기일대를 장악하였고, 더 내려가 신라를 완전히 압박(중원고구려비)하였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사실 고구려는 당시 주변국들을
광개토왕은 정복 군주로서 백제를 공격하여 임진강과 한강까지 진출하였고 북으로는 후연(後燕)을 쳐서 요동(遼東)을 차지하고 숙신(肅愼)을 복속시켰음. 이어서 장수왕은 제도의 정비와 대외 외교 관계를 확대하여 중국을 견제하였으며, 장수왕 15년(427)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 고구려의 남하 정책에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광개토왕은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을 침공하여 남쪽 영토를 임진강과 한강까지 확장시켰고, 신라의 내물왕을 원조하여 왜구를 격퇴하였다. 또한 북으로 후연을 쳐서 요동을 완전히 차지하고, 아울러 요서 지방의 일부까지 진출하였다. 광개토대왕은 숙신과 동
고구려의 대외정복의 역사는 우리가 오늘날에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고구려의 대외정복활동은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가장 활발했고 성과도 가장 컸다. 이 시기의 두 왕이 바로 광개토왕과 장수왕이다. 이 글에서는 고구려의 대외관계와 영토확장과정에 관해서 주로 알아보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