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공, 수나라 고구려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전염병과 해전에서 패배, 많은 물자와 병기 노획으로 수나라는 화친을 함(598년)
612년 수 양제의 1차 침입 (살수대첩) 수나라 패배
613년 수 양제의 2차 침입 (요동성 전투) 수성전략으로 이김
614년 수 양제의 3차 침입, 서로의 전의 상실로 화친으로 끝남
한국사 인식의 일면도 드러났다. 조사에 응한 교포 고교생 중 46명(20.9%)은 ‘종군위안부가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고, 30.5%(67명)는 동해의 영어 표기가 ‘Sea of Japan’이라고 응답했다.
조사 결과는 국사교육의 문제점도 드러냈다. 우리 고교생의 경우 64%(673명)가 ‘학교수업’에서
당나라와 고구려 지배층사이의 충돌이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나 그들 간에 있었던 수많은 종교적, 문화적 교류를 교과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교과서에서는 수나라와 고구려 사이 전쟁의 승리자 을지문덕 등은 우리 민족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구한 한국사의 영웅으로
당나라는 고구려에 안동도호부를 두었으며, 곳곳의 부흥운동도 실패로 돌아갔다.
(4) 나.당 전쟁(675년)-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모아서 당나라를 쫓아냄.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영토로 만든 당나라는 다시 신라까지 넘보았으나, 670년 신라가 먼저 압록강을 건너 당나라를 공략, 나당전
고구려의 멸망 원인에 대해서는 "겸손한 뜻이 없고 중국의 봉토를 침략하여 원수를 만들고, 그 군현에 들어가 살았다. 이 때문에 전쟁이 이어지고 화가 맺어져 거의 편안할 때가 없었다. [고구려는] 동쪽으로 도읍을 옮기고 수나라와 당나라가 통일한 때를 만나고도, 오히려 천자의 명에 거역하여 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