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회 비판적 미술운동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우리 나라의 기존 화단에서는 민중 미술을 예술성이 결여된 정치적 선전이라고 공격하는 등 화단이 양분되다시피 한 격론과 반론을 겪어야 했으며 이러한 과정은 다양한 시각 모색의 시련과 반성을 향한 자극이 되었다.
화단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었을까? 해방이후 국내 화단은 크게 두 가지의 흐름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일제 시대의 선전에서부터 계속되어온 심미주의적 경향의 미술과 앙포르멜, 국제주의 그리고 현대주의를 지향하는 형식 실험의 미술경향이 그 것이다. 이러한 국내 화단의 전개 양상 속에서 1975년
Ⅰ. 서론
광주항쟁을 승리한 항쟁으로 규정하여 그 과정과 요인을 설명했지만, 한 가지 지적할 일은 이 승리가 완전한 승리라기보다는 ‘제한된 승리’라는 사실이다. 그 근거는 두 가지 차원에서 확인된다. 첫째는 적극적 미래지향적 전망에서 볼 때, 봉기시의 자치공동체에서 실현되었고 5월 운동
Ⅰ. 서론
광주민중항쟁을 전체 민족운동사의 시각에서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들은 사건의 직접적 원인보다는 그것이 발생한 구조적요인에 초점을 맞추고 현대 한국사회 전체의 계급배치와 투쟁양상의 변모 속에서 민중항쟁의 필연성을 설명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런 맥락에서 광주민중항
Ⅰ. 개요
미술관이나 음악당에 갇힌 고급예술은 일상의 맥락에서 완전히 유리되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예술이란 개념과 제도를 폐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죽은’ 예술 개념이 다시 살아있는 진정한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고급과 저급이라는 대분할이 아니라 그 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