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니우스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코메니우스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일생동안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강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세 때인 1611년에 그는 헤르본 대학에 입하하여 신학과 철학을 배
회원이었기 때문에 그 교회의 환경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가 일찍 죽어 정식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16세에 이르러 프레라우(Prerau)에 있는 라틴학교에 들어갔고, 그 학교를 마친 후에 독일의 헤어보른(Herborn)에 있는 독일개혁파교회의 인문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게 된다(1611-12).
코메니우스의 어린 시절의 철저한 신앙교육과 종교적인 환경은 그의 일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가 자신의 불운했던 모든 환경을 이기고 일평생을 좌절하거나 비관적으로 살지 않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일관되게 살아 갈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해 볼 때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어린 시절
철학을 배웠다. 여기서 그는 당시 성서 주석가인 피셔(Johann Fisher,1546-1625)와 신학자이자 백과전서 학자인 알쉬테드(Johann heinrich Alsted, 1588-1638)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특히 그는 알쉬테드의 영향으로 범지학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코메니우스는 1613년 신교 학문의 중심지인 하이델베르
Ⅰ. 생애와 시대적 배경
코메니우스는 ꡐ근대 교육의 아버지ꡑ라 일컬어지는 인물로 낡고 봉건적인 교육론과 그 실태를 분석함으로써 새롭고 근대적인 교육론을 체계화하였고, 세계 인류의 평화와 사회의 행복을 위해 인생을 바친 사람이다. 또한 근대적인 유아 교육관을 근간으로 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