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회의 주강사는 미국 북장로교 해외 선교부 위원이었던 존스턴이었다. 존스톤은 사경회를 인도하면서 웨일즈와 인도에서 일어난 부흥운동 소식을 전하며 한국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도전을 준다.
존스톤의 설교는 한국에 파송받은 선교사들의 시각을 바꾸어준다. 평양주재 한국의
교회지도자들,감리교 교회 지도자들로 구성된 사경회가 두 주간 동안 열림.
③1903.6.22-7.3에 조사들을 위한 여름사경회가 열림. 1903년에만 평양의 장로교회에서 1,104명이 세례를 받고, 1063명이 학습을 받음.평양시내 감리교회마다 주일에 평균 700명이 모임. 1903년 8월 개성에서 은혜를 경험한 문경호
2. 평양대부흥운동의 역사적 배경
평양대부흥운동에 대한 연구들은 이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배경과 원인으로는 한국의 내적인 것으로 한국교회가 갖고 있던 사경회, 기도회 및 한말 위기에 처한 국가적인 상황을 들 수 있고, 외적인 요인으로는 세계부흥
선교사에 의해 이 땅에 전해진 것이며, 알렌의 입국을 선교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선교식민사관을 바탕으로 평양대부흥운동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먼저 백낙준에 의해 이루어졌다. 백낙준, 『한국개신교사』(연세대학교 출판부, 1973), 383~395쪽
그는 대부흥운동을 비기독교인을 신자화
대부흥”은 이 같은 기로에 선 한국교회에게 그 가야할 길을 제시한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게 인정되고 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대부흥운동은 회개운동의 성격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어 민족을 영적으로 각성시키므로 영적 차원의 새로운 소망과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