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하나되지 못할까 하는 물음을 제기한다.
한국교회는 선교 1세기를 지나고 2세기를 향한 현 시점에서, 서구교회의 사양화에 반비례하여 놀라운 양적 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함 못지않게, 한국교회의 분열과 무질서 문제 나아가 사회 정의(Social Justice)에의 무관심했던 문제를 진지하게 반성하
선교사업이 더 일반 대중에게 큰 의미를 주었다. 그 중에서도 의료, 교육, 출판, 사회개혁은 초기 기독교 성장에 두드러진 역할을 함
출판 및 한글 보급 - 1882년 스코틀랜드의 장로교선교사인 로스목사가 만주에서 맥킨타이 목사와 한인 이응찬과 함께 마가복음, 누가복음 을 번역 출판을 시작으
신학교는 경남노회마저 신학교 인가를 취소하자 더 이상 장로교 총회와는 무관한 신학교가 되고 말았다.
1948년 12월 7일 마산 문창교회에서 개회된 제50회 경남노회에서는 고려신학교의 인준 취소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신사참배에 대한 양심문제 운운하는 것은 신학 박사라야 언급할 수 있는 사안”
한국선교사들이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었음.
*오늘날의 세브란스 병원으로 발전하게됨.
(성경번역과 문서선교)
*각종 문서와 서적을 출판해 냄으로 기독교 복음 전파가 한결 쉽게 되었음.
<개신교의 해방과 새로운 출발>
10. 해방 후 한국교회의 역사
1) 8.15 해방과 교회의 재건 운동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