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교(禮敎)를 벗어난 삶
허균(許筠, 선조 2년 1568~광해군 10년 1618)은 명문인 양천(陽川) 허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초당(草堂) 허엽(許曄)은 서경덕(徐敬德)의 제자이자 동인의 영수였으며 그의 형제자매들은 문명을 날렸다. 허균은 집안의 막내로 작은 형님 하곡(荷谷) 허봉(許燈)으로부
허균(許筠, 1569년 12월 10일(음력 11월 3일) ~ 1618년 10월 12일(음력 8월 24일))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학자이자 작가, 정치가, 시인이다. 본관은 양천,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또는 학산(鶴山), 성소(惺所), 성수(惺叟)로 불렸고 후에는 백월거사(白月居士)로도 불렸다. 서자를 차별 대우하는 사회 제
1. 시대적 상황
허균은 16세기 말엽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살았다. 이때는 조선조가 중기로 접어든 때였다. 조선조가 세워진 뒤로 중기까지에는 태종과 세종의 손에서 내정의 바탕이 굳게 다져졌고, 또 왜구와 북방 민족의 침입이 크지 않아서 나라의 기틀이 튼튼해졌으므로 비교적 태평스러운 세월이
㉠글을 쓰면서
당대 명문가요, 앞길이 탄탄대로일 수 있었던 그는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보수적인 지배층들의 눈 밖에 났다. 허균은 시대의 반항아요, 탁월한 문인이었다. 그의 자유분방한 생활과 예리한 감수성, 그리고 진보적인 기질은 어느 누구보다도 예속의 속박을 벗어나 자유스러운 성격을
Ⅰ.들어가며...
역사 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로 역사를 정의하였다. 전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역사 속에는 항상 기존 세력과 새롭게 부상하는 세력 사이에 다툼이 있어왔으며, 그들의 관계에서 역사는 항상 그 흐름을 이어왔다.
지금 현재에도 현실의 세태와 부조리한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