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허균은《학산초담(鶴山樵談)》《성수시화(惺馬詩話)》에서 나타냈다. 허균은 과거에 급제하여 30세에 병조좌랑에 올랐지만 유가의 가르침에만 얽매이지도 않았다. 그는 황해도사로 있을 때에 ‘서울기생을 이끌고 다니고 무뢰배들이 드나들게 했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고 불교를
홍길동전>을 남겼다. 한마디로 그의 꿈은 평등사회, 개방사회, 국제사회를 실천하는 것이며, 이미 400년 전에 우리가 나아갈 민주사회의 바른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 특히 부각된다.
허균은 1569(선조 2년)에 출생한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고 당대의 손꼽히는 명문가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허균이 혁신적이고 재능이 있는 인물이었으나, 그 당시 사회에서는 배척당하는 시대를 앞선 사나이’라는 것에 맞추어 쓰이고 있다.
다음은 허균의 시에 관한 연구이다. 허균은 상당히 많은 시를 남겨두었다. 그의 시는 『홍길동전』에 나오는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측면보다는 일상의 삶에 충실한 인
.[7] 네 건 모두 사람이 죽었지만 조사 과정에서 황당하고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아 수령들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감영으로 올려보낸 것들이었다.
이 장에서는 국문3고소설론과작가-강의와 교재에 소개된 고소설 작가 네 사람김시습허균김만중박지원의 문학관 및 작품 등에 관하여 설명하기로 하자.
1. 구속과 자유의 공간에서 빚어낸 문학
허균(許筠,1569~1618)은 일반적으로 국문소설의 효시작으로 알려진 「홍길동전」을 지었으며 김시습, 박지원과 함께 우리 소설문학사의 뚜렷한 획을 긋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당시 엄격한 유교 윤리와 예학(隸學)에 사로잡힌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양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