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민회의 목적과 이념
신민회의 궁극적 목적은 첫째, 국권을 회복하여 자유독립국을 세우고 둘째, 그 정체를 공화정제로 하는 것이었다. 신민회가 국권회복 후의 정체를 전제군주제의 입헌군주제로의 개혁으로 하지 않고 군주제를 폐지하여 공화국을 세울 것을 공식적 목표로 한 것은 한국역사
한국기독교의 역사서술은 사관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발전 과정은 백 낙준 박사의 선교사관에서 시작하여 민경배교수의 민족교회사관을 거쳐서 주 재용교수의 민중교회사관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모든 사관은 보수 진보 양측으로부터 가혹한 비판을 받고 있다. 선교사관은 진보 진영으로
신민회 내의 온건파들이다. 이들은 일본의 아시아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일본의 침략성을 규탄하였다. 그러나 이들도 역시 선실력의 입장을 취하여, 1918년 말 3·1운동 발발 직전 안창호는 “독립전쟁 혹은 외교운동으로 독립을 이루어보겠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허황된 것”이라고 말하고
하나로 꼽히며, 독립운동과 정치운동을 병행하면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했다. 이처럼 안창호는 그의 교육개혁, 독립운동, 교육, 정치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대한민국의 독립과 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기억되며, 그의 이름은 한국 역사와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신민회(新民會)의 회원들이었다. 이들 신민회 회원들은 1909년의 비밀회의에서 서간도에 독립군 기지를 설정하고, 그곳에 군관학교를 창설하여 많은 독립군 간부를 양성해 냄으로써 장차 국권회복을 도모할 것을 의결하였다. 세 번째로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한국인 장교들의 항일무장 독립군진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