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중엽에는 연담 유일 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당시 불교사전이라 할 수 있는 '석전유해'를 편찬하였다. 그런데 19세기 이후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유실되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일제시대와 6.25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다.
신라, 가야토기와 같은 질을 지닌 수에키(須惠器)가 나타나 4세기 후반이 되면 야마도(大和)정권이 일본 국내를 통일해 간다. 고분시대의 후반인 6세기 초부터 7세기 중엽까지는 아스카(飛鳥)시대라고 해서 일본 역사의 무대는 규슈(九州)지방에서 긴기(近畿)지방으로 옮겨지며 쇼도쿠(聖德)태자 시절에
II-1. 신라말기(후삼국 시대)의 왕건, 견훤, 궁예
1. 궁예
정치적 감각: 구고구려계 지방 세력을 자신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옛날에 신라가 당에 청병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기 때문에 평양 옛 서울이 황폐해져서 풀만 무성하니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으리라.”고 말하는 등 고구려 부흥 주
신라가 쇠망할 무렵 경순왕 김부를 선두로 최․김․이씨 3성은 경주로부터 개성으로 집단이동을 했으며, 또한 고려왕조는 아무 기탄없이 신라의 구세력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왕건의 부하장병을 중심으로 한 지방호족계 무사군과, 신라에서 귀순해 온 경주귀족계 문신에 의해 두 개의 상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