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와 질병 등에 시달리는 곳들이 많이 있는 실정이다. 전 세계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은 8만 4000만 명이나 되고 해마다 600만 여 명의 어린이가 다섯 살도 되지 못해 굶주림으로 숨진다. 더구나 이러한 빈곤의 문제는 사회 인프라에 투입될 수 있는 자본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위생, 교육, 나아
세계를 벗어나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과 묘사로의 발전을 보였다. 이 시기에는 일제의 수탈과 빈부의 양극화 속에서 가난과 무관심에 에 허덕이는 노동자와 농토를 빼앗기고 살길을 찾아 도시로 밀려든 하층민 등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운수 좋은 날」에는 앓고 있는 아내에게 약조차 지어먹
대한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정말 인류가 멸망하는 날이 올까?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이 질문에 대해 맬서스는 과감한 대답을 내렸다. 그는 모두가 기대하는 유토피아, 즉 낙원에의 환상을 거부했다.
인구는 등비 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은 등차 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인구수와 식량의 불균형
문제의 상황을 진단할 능력마저 결핍된 지식인들이 자기만족을 쉽게 얻으려 한 탓에 진취적인 낭만주의를 거치지 않고 퇴폐적인 낭만주의로 바로 들어섰다. 이러한 퇴폐적이고 허무적인 성향을 띠게 된 것에 대해 낭만주의 작가들이 거의 현실의 부정을 인식의 공통점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부정되
문제로 파고든 역사의식을 지닌 특이한 작가이다.
그리고 김윤식씨가 그의 ‘강경애론(姜敬愛論)’에서 ‘강경애는 작가다’ 김윤식, 「강경애론」,『속 한국근대작가논고』일지사, 1981
라고 지적할 만큼 ‘여류’작가가 아닌 ‘작가’ 강경애로서 자기의 세계를 가지고 활동했던 작가도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