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보았다. 김용철 김용철, 「진청<무씨명>의 분류체계와 시조사적 의의」, 138-141쪽, 『고전문학연구』16, 고전문학회, 1999
은 진청의 편찬이 김천택 단독의 작업이라고 보고 있지 않으며 시조를 선택하고 배열하고 배치하는 종합의 과정에서 다수의 공동적인 시각이 관여하고
㉣ 방황과 홀로서기
율곡은 나이 열 셋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고, 이때부터 문장이 날로 성취되어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그런 명성과 기대 못지않게 그의 학문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과 갈등은 더욱 커져갔다. 자신을 알아준 문장가 송인(宋寅)에게 보낸 다음 글은 그의 이러한 갈등을 단적으
시조를 연구함에 있어 그의 생애는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고전 시조사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기고 다양한 유형의 시조를 남긴 이세보는 그간 많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될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었으나 다음의 이유들로 인해 그 동안의 연구는 심도 있게 이루어지지 못했
시가 지속되었고, 게다가 구곡가사까지 등장했던 상황을 감안할 때, 시조라는 개별 장르로서의 독자적 전통을 수립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곡가계 시조로 언급할 수 있는 작품은 권섭의 <황강구곡가>를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에는 우리말 구곡시가도 한시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