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기독교교육이라고 정의 내릴 수는 없다. 우리가 배우고 지키는 기독교교육은 말씀에 대한 신앙의 진리를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방식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그리고 증거 할 수 있도록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교육이 목적하는 바는 단순한 교리의 학습만이
하였다. 이러한 아버지 상에 대한 융의 추구는 프로이드와 동일시하려고 한 것이나, 인격의 중심인 자기를 추구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연결된다. 융은 아버지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로서 대표되는 기독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대한 객관적인 판단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필자가 아는 모 친구도 신천지 교회에 빠져 나를 만나 교리를 들어보라고 몇 차례 요구해 추수꾼에 끌려 들어가 2달에 걸쳐 교리 내용을 들으니 종통교회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아 그 이후로 일체 핸드폰 통화를 끊고 연락을 하지 않아 지금은 신천지교인과 연
교육 활동의 기본 단위가 된다.
그러나 교과에 포함되는 구체적인 내용은 학교의 목적이나 각 시대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서 달라져 왔다. 결국 교과는 각 시대마다 학교가 가르쳐야 할 이상적인 것이었으며, 이는 각 시대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었는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대한 철저한 적응의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청교도 선교운동은 교리교육적인 선교, 선교기지중심의 선교, 교회 연합적 선교였으며 웨슬리 형제의 선교는 소그룹모임의 동력화, 순회전도사역을 통한 평신도지도력의 활성화, 복음의 수용성이 있는 계층에 대한 전략적 선교, 사회봉사를 통한 총체적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