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
종말론은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을 띠고 있었을까?
아리에스는 중세의 예술품들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당시 예술품들을 살펴 보면, 현대의 기독교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종말의 ‘지옥’ 과 ‘심판’ 의 이미지가 없다. 대부활의 순간에 모든 사람이 함께 부활할 뿐이다. 이들은 죽음을 예수 그
종말론을 폐물화 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말론은 사라지지 않고 천년왕국과 재림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 현대에 와서 종말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라 다양한 모습으로 종말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런 종말론은 기독교를 관념론적 사색의 속박에서 해방
종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종말이 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몰트만은 종말을 이야기하며서, “희망”을 기독교의 핵심으로 끌어올렸으며, 종말 또한 이 “희망”을 근거로 풀이해내고 있다.
또한 몰트만은 종말론이 신학의 뒷전이 아니고, 시작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는 전
기독교의 종말론은 크게 무천년설, 천년기전설, 천년기후설로 갈라진다.
①천년기전설 (premillennialism, 전천년설)은 예수의 재림이 천년 왕국 이전에 있다고 본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성도들과 더불어 1천년간 이 세상을 다스리며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설이다. 천년기전 설은 재림 후 천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