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자들에게는 바로 구원의 하나님을 향한 자신들의 간절한 호소요 기도였다. 출애굽의 사건과 바벨론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성을 재수축하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현재 한국민족을 위하여 베풀어주셔야하는 구원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독립단 통고문에 보면 ‘일본인을 모욕하지 말것, 폭력을 사용
민족의 단결은 조국독립을 위한 불가결한 전제라는 것도 인식했을 것이다.
Ⅲ. 일제치하의 민족지도자
1. 교육자로서의 조만식
1) 오산학교와 조만식
1913년 조만식은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오산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15년에는 교장으로 취임하였고, 3·1운동으로 투옥하였다 출소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개신교의 활동은 한국의 문호가 개방되는 과정에서 들어온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된다. 선교사들이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무렵에 선교의 자유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직접적으로 선교하기보다는 학교와 병원 등
민족운동의 선구가 되어 많은 민족운동 지도자가 배출되어 독립운동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기독교 단체인 YMCA와 YWCA, 이 두 단체는 이승만, 김규식 같은 독립 투사나 김활란이나 김필례, 유각경 같은 신여성을 배출했다.
이처럼 19세기 말 전래된 기독교가 한국의 근대사에 미친 영향은 교
한국교회의 실천과제로서 북한선교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1)
통일과 민족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자아모색
한국의 기독교사를 보면 시대마다 분명히 교계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구한말에는 개화와 애국충군이었고 ㉯일제 치하에서는 조국의 독립과 신분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