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해 조선 후기 변방민중의 생활현실을 폭 넓고 깊게 그려내고 있다. 그 외에도『장원경 처 심씨를 위해 지은 시』『감담일기(坎窞日記)』『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등이 있다. 1806년 유배생활이 끝났으며 해배(解配)이후 김려는『담정총서』17책 34권을 편찬, 야사집(野史集) 편찬에 몰두하였다.
담정그룹이 도달한 최고의 높이를 보여준다. 담정은 자신의 새로운 인식을 체계적 사상으로 논리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인적 감수성으로 근대적 평등의식을 선취(先取)함으로써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예감한 점에서 가히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10여년에 걸친 유배생활을 통해 담정의 감수성은
유배생활에서 비롯된 서간문(書簡文)은 양도 풍부하고 문장도 빼어나다. 정약용은 여느 일반 사대부처럼 자신의 유배생활상을 전하고 안부를 묻거나 가르침을 전하는 등의 방편으로 서신(書信)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정약용에게 편지란 ‘세상과 통하는 단 하나의 통로’로써 유배생활
김려, 심노숭 등 소품을 읽고 따르는 신진 문인들, 소위 소품가(小品家)들이 바로 그러한 예로, 그들은 기존의 권위적 고문문체를 파괴하는 색다른 문체를 실험하고, 새로운 감성과 소재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 결과 조선 후기 문인들은 산문에서 정치적, 관념적, 이념적인 담론보다 ‘일상생활의 소박
허구를 적용하여 가공한 패설들이다. 셋째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과 인민들의 일화, 문물제도와 민속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며 넷째는 저자가 유배살이나 표류과정에 직접 체험하였거나 보고들은 것들에 대하여 쓴 기록들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용재총화>, <패관잡기>, <동인시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