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해 조선 후기 변방민중의 생활현실을 폭 넓고 깊게 그려내고 있다. 그 외에도『장원경 처 심씨를 위해 지은 시』『감담일기(坎窞日記)』『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등이 있다. 1806년 유배생활이 끝났으며 해배(解配)이후 김려는『담정총서』17책 34권을 편찬, 야사집(野史集) 편찬에 몰두하였다.
이옥(李鈺, 1760∼1813)이 있다.
담정의 탁월한 시인적 감수성은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새로운 가치관의 모색으로 이어지고 있어 담정그룹이 도달한 최고의 높이를 보여준다. 담정은 자신의 새로운 인식을 체계적 사상으로 논리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인적 감수성으로 근대적 평등의식을 선취(先取)
. 특히 천민들에게 유가적 이념을 구현시켜 지주계층을 풍자하는 진구로 삼았던 것이다. 김인수, 「마장전 연구 : 윤리의식을 중심으로」, 인하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0, pp.25~35.
10) 열녀함양박씨전
연상각선본에 실린 열녀함양박씨전은 개가 금지의 반대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작품에는
작품이 나타났다. 여항시인이 등장하고 이들이 다수의 현실주의 시를 지은 것은 전에 없던 현상으로, 이는 시문학 창작층의 확산과 현실주의의 다양한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넷째, 서사 한시가 집중적으로 창작되었다. 이 시기의 현실주의는 서사한시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바, 그것이 이룩한
이옥이었다.에 휩쓸리게 된다. 정조는 이옥에게 매일 사륙문四六文 50수씩을 지어 문체를 고치도록 명을 받았다. 이 기록은《정조실록(正祖實錄)》정조 16년 10월에 나와 있다. 김균태 「李鈺」, 황패강 외 공편《한국문학작가론》3, 집문당, 2000 이옥은 끝내 문체를 고치지 않았고, 이후 수차례의 견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