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단원 김홍도의 생애
1745년(영조21년) 한양에서 아버지 김석무(錫武)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외가는 대대로 도화서 화원을 배출한 집안이었기에 외조부와 외숙에게 그림을 배웠다. 어려서는 경기도 안산에 칩거 중이던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이며 이론가인 표암 강세황(姜世晃)의 문하에서 그림을
그림의 흥취를 돋구어내는 그의 시에서 엿보인다. 여항이란 무엇인가? 여항은 중인들이 사는 좁은 거리라는 뜻으로 가난한 중인들이 모여 살았던 지금의 인왕산은 여항문학의 산지였다. 이인문과 김홍도 등의 화원들의 그림 속에서 발견되는 그들 가난한 여항문인들은 신분제의 벽과 서민들의 생활을
김홍도임을 암시하는 내용이 암호로 쓰여졌다고 말했다. ‘사능(士能) 조사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김홍도의 그림 중 <송하맹호도>에 보면 낙관에 ‘사능(士能)’이라고 적혀있다.
’이라는 말이 있는 데 그게 바로 김홍도를 지칭한다는 주장이다. 이 문제는 그 이후로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한
그림에서 보는 미법산수화풍도 있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은 어느 날 꿈에 본 아름다운 도원의 모습을 안견에게 들려주며 그림을 그리게 했다. 이 그림이 바로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이다. 그림의 앞부분에 있는 안평대군이 직접 쓴 서문(序文)에는 세종 29년 4월 20일 한밤중에 박팽
Ⅰ. 개요
신윤복은 여속, 여색, 춘의도의 독보적인 작가로 김홍도와 구분된다. “서체와 괴석, 수파묘, 변형된 하엽준법 등 산수화적 요소”와 “풍속화적인 요소”에서 김홍도의 영향을 흡수하였지만, 소재의 선택과 표현방법, 구성법, 설채법 등에서 그와 다른 세계를 이룩하였다.
특히 소재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