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항아리 Der zerbrochene Krug〉(1812)의 집필에 착수하였다. 이어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괴테, 실러, C. M. 빌란트 등을 만났으며, 다시 파리로 가서, 자기 시재(詩才)에 절망을 느끼고 원고를 불태워 버렸다.
1804년 귀국 후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의 칼리닌그라드)의 말단 관리로 취직(1805~1806), 희극 〈암피
1.1. 작가 약력
작가 김소진은 1963년 12월 3일 강원도 철원에서 2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1982년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90년부터 한겨례 신문 교열부와 문화부에서 5년간 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95년 신문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소설가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1997년 췌장암 진단을
항아리가 아니라 오히려 산산조각으로 깨어진항아리에 해당되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거들의 복귀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매우 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가부장적인 모더니즘의 권위 아래에서 주변적인 위치밖에는 차지하지 못
작가들은 작품의 유기적 통일성을 부정한다. 그들은 통일성이나 일관성보다는 오히려 편리성이나 임의성 또는 유희성을 더욱 설득력 있는 예술적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작품은 '잘 빚어진 항아리'가 아니라 오히려 '산산조각으로 깨어진항아리'에 해당되는 셈이다.
항아리가 아니라 오히려 산산조각으로 깨어진항아리에 해당되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거들의 복귀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매우 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가부장적인 모더니즘의 권위 아래에서 주변적인 위치밖에는 차지하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