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이동이란 流民化 즉, 귀족들의 자기항쟁에 기인한 통치기강의 문란과 토지의 집중화에 기인한 것으로 많은 수의 인구가 경주에서 지방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수직이동이란 권력 다툼이 전란으로 일어난 경우 미천한 계층에 있었던 자들이 군대에 들어가 전공을 세움으로써 상향이동하
분열되었다. 즉 후삼국의 성립을 가능케 한 것은 지방호족세력의 등장 때문이었다. 이러한 역사는 후고려의 기반을 계승한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다시 통일되었다.
Ⅱ. 나말여초의 변혁을 주도한 6두품과 호족
1. 육두품신라에는 골품제라고 불리우는 엄격한 세습적 신분제가 있었다.
지방에 근거를 둔 토착세력으로서 자신의 세력이 미치는 지방의 민중들을 직접 지배하며 독자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사에 있어서 고대・중세의 전환기가 되는 나말여초라는 내란기를 이끈 세력으로서, 신라를 해체하고 고려를 성립시킨 주역들이다. 따라서 호족은 신라의 중
신라에 대해 적대적 정책:
예1) 부석사에서 벽에 그려진 신라왕의 상을 보고 검을 내리친 것
예2) 서라벌을 멸도라 부르며 신라에서 오는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린 일.
2. 견훤
호족정책 : 지방호족들의 자기 지역의 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부 호족들은 회유하려 했으나 기본 정책은 호족들의
신라 하대 수입되어 재지세력들에게 호응을 얻기 시작하며 사회적 위상을 확립하며 양적성장을 이룬 선종을 주목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화엄종으로 대표되는 교종과 이에 대비되는 종교 세력인 선종과의 차별상과 더불어 진골 귀족과 지방호족의 차별상을 나란히 놓고 해석함으로써 나말여초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