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이동이란 流民化 즉, 귀족들의 자기항쟁에 기인한 통치기강의 문란과 토지의 집중화에 기인한 것으로 많은 수의 인구가 경주에서 지방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수직이동이란 권력 다툼이 전란으로 일어난 경우 미천한 계층에 있었던 자들이 군대에 들어가 전공을 세움으로써 상향이동하
분열되었다. 즉 후삼국의 성립을 가능케 한 것은 지방호족세력의 등장 때문이었다. 이러한 역사는 후고려의 기반을 계승한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다시 통일되었다.
Ⅱ. 나말여초의 변혁을 주도한 6두품과 호족
1. 육두품신라에는 골품제라고 불리우는 엄격한 세습적 신분제가 있었다.
호족세력의 추이
나말여초의 사회변동의 요소로 주로 꼽히는 것은 권력쟁탈전의 심화와 지배체제의 약화, 부의 집중화, 새로운 사상의 대두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개별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끼치면서 발생했다. 여기서는 편의상 정치면, 경제면, 사회면, 사상면으로 나누어
호족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극복하려는 관점이 제기되었으며 교종과 선종을 대립이 아닌 공존과 양립의 차원으로 이해하려는 연구가 진척되었다. 선의 일방적 우위를 지양하려는 이러한 관점은 선종일변도의 나말여초사상사인식에 대한 전환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불교 사상
사상
1) 최치원의 생애 및 문학세계
최치원은 857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최씨 가문 중에서도 이른바 ‘신라말기 3최(崔)’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 성장하는 6두품출신의 지식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원래 신라사회에서 육두품은 그 지위가 성골·진골보다 하위계층이긴 했으나,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