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정집서
<난정집서>는 <晉書·王羲之傳>에 보이며, 唐 歐陽詢의 <藝文類聚>에도 수록되어 있다.
東晋 穆帝 永和 9년(353년) 음력 3월 3일에 41명의 명사들이 蘭亭에 모여 修稧(수설)의 행사를 거행한 후 曲水之宴을 베풀고, 이 연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지은 시를 모아 왕희지가 자신의 감회를 더하
난정집서>를 통해서 왕희지의 감흥, 가치관․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우선 <난정집서>를 이해하기 위해 왕희지가 살았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사상, 왕희지의 성격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것은 사회와 개인의 불가분의 관계, 개인의 성격․행동이 그의 삶의 행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난정집서(蘭亭集序)」,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등이 있다. 역사산문으로 분류되는 범엽의「후한서(後漢書)」와 진수의 「삼국지(三國志)」가 있으며, 특히「삼국지(三國志)」는 소설「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관련이 깊어 소설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그리고 소설에 있어서 만은 현실을
한나라와 위진 이후의 문자
한나라 때에 주로 쓰였던 문자 : 예서
예서에 대한 보조적 글자체 : 초서
동한 중기 : 예서의 필획을 단순화한 속체인 ‘새로운 예서체’의 출현
동한 말기 : 예서와 초서가 합쳐진 ‘행서’의 출현
한나라와 위나라의 전환기 : 행서의 기초 위에 ‘해서’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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