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후 지서달사 친결만기
太和: 366~371
臨朝稱制:수렴청정-섭정과 동일한 의미, 조회에 임석하고 황제의 명령과 같이 황태후의 명령
풍태후가 다시 조정에 임해 섭정으로 칭제하며 태화로 개원하고 존칭으로 태황태후가 되어 글을 알고 일에 통달해 친히 만기를 결정했다.
授兄馮熙爲太師中書監。
보내고 파동왕에 승진했다.
永明七年, 由江州刺史調鎭荊州, 都督荊、襄、雍、梁、寧、南北秦七州軍事。
영명칠년 유강주자사조진형주 도독형 양 옹 양 녕 남북진칠주군사
영명7년에 강주자사에서 형주를 다스리게 되어 형주, 양주, 옹주, 양주, 녕주, 남진주, 북진주 7주군사 도독이 되게 했다.
子
보여주었다.
武周居突厥數月, 亦欲亡歸馬邑, 偏被突厥聞知, 也將他殺死。
무주거돌궐수월 역욕망귀마읍 편피돌궐문지 야장타살사
유무주도 돌궐에 수개월 있다가 또한 마읍에 도망해 돌아가려다가 돌궐이 들어 알고 그는 죽임을 당했다.
先是武周南寇, 謀臣苑君璋進諫道:“唐以一州兵取三輔, (
여법진이 병사를 내어 출전해 한두번 패배해 돌아와 소보권에 청하길 창고 은을 꺼내 군사를 호궤하여 군사 마음을 진작시키자고 했다.
寶卷道:“賊來豈獨取我??何故向我求物!”
보권도 적래기독취아마 하고향아구물
소보권이 말했다. “적이 옴이 어찌 홀로 나만 취하겠는가? 어떤 이유로 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