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1920년대의 정우회
북풍회, 화요회, 조선노동당, 무산자동맹 등 4개 사회주의 단체는 1925년 4월에 사단체합동위를 결성하였다. 1926년 이들은 민족주의자중 좌파와의 협동전선을 촉진할 것을 의안의 하나로 채택 하였다. 그러나 서울청년회의 사상단체인 전진회가 사단체에 대항하여 조선사회단체
농민운동
1. 소작인조합에서 농민조합으로 발전(26년 이후)
소작농 중심조직에서 자작빈농, 자작중농까지 포함했다. 지역적으로도 남부지방 뿐만 아니라 북부지방, 동해안지방에서도 활발히 조직되었다.
2. 조선농민총동맹 창립(27.9)
산하 농민단체 수 27년 160개소, 28년 307개소이다. 그러나 각
농민운동
1. 발생건수
1920년 15건, 1925년 204건
2. 쟁의 건당 평균 인원 수
1920년 264명, 1923년 106명, 192년 20명(대지주→중소지주 농장까지 확산)
3. 투쟁
소작료 인하투쟁, 지세공과 전가반대투쟁이 중심(1922년까지) 이후 소작권 이동 반대투쟁
4. 전남 무안군 암태도 소작쟁의
1923년 가을 암
동맹 초대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최고인민회의부의장, 조·소친선협회위원장, 문학예술총동맹위원장 등을 지냈다. 월북 전의 대표작으로는 《서화(鼠火)》 《고향》 등이 있다. 《고향》은 농민생활에 대한 서사적 작품으로서 농민소설의 정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월북 후의 대표작으로는 인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