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은 영의정에 올랐으며 왕을 대신해 서무를 관장하는 등 왕권과 신권을 동시에 장악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에 참여한 인물들은 정난공신에 봉하고 안평대군과 그의 아들 우직은 강화도로 유배시켰다가 안평대군은 사사시키고 우직은 진도에 유폐시켰다.
1454년 이름뿐인 왕이었던 단종은
대군(세종의 셋째 아들로 수양대군의 동생이자 경쟁자)과 역모를 획책하여 그들을 제거했다고 고한다. 안평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다가 교동으로 옮겨 사사하고 수양대군은 이 사건으로 반대세력을 완전히 제거하고 조정의 1인자가 된다. 이것은 계유년(1453년)에 일어난 사건이라 하여 계유정난
세력화하였다. 종친의 참여는 원래 금지되었지만, 세조는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이들을 중용하였다.
세조는 이러한 여러 정책과 함께 『경국대전』의 편찬을 통하여 강력한 왕권과 국왕 중심의 정치체제를 고착시키려고 하였고, 세조 11년(456)까지는 국왕 중심의 국정운영체제가 실효를 거두어 왕권
의정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킴으로서 왕권을 강화해 나갔다.
3. 세종의 문화정책
태조와 태종 때에 다져진 왕권강화는 세종 때에 이르러 화려하게 피어난다. 집현전 창설, 각종 발명품, 한글 창제, 육진과 4군의 확립, 왜구의 진압 등 대내외적으로 조선의 문화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조선왕조실록 요약_1>
조선왕조 실록이란?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준 2,077책으로 이루어진 기록물
· 한 책의 두께가 1.7cm인데 아파트 12층 높이
·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생존했을 때 만들어지지 않고, 승하(세상을 떠남)하고 난 뒤에 편찬
·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담당하던 춘추관에서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