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를 칭하게 된 이유 정도만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대한제국 때의 원구단>
19C 말, 조선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경쟁은 치열했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일본의 야욕과 조선에서의 종주국 입지를 유지하려는 중국(청)의 대결이 극심해졌고, 일본과
고종 때이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친일 관료들과 일본의 압력이 거세지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게 된다. 이것이 ‘아관파천’이다. 1년을 그곳에서 머문 고종은 경운궁 재건사업을 통해 경운궁을 수리하여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 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하고 원구단에서
대한제국의 성립과정을 살펴보고, 대한제국의 성립 후 진행된 광무개혁의 내용과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광무개혁과 관련된 유적을 답사함으로서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야만 했던 우리나라의 근대사의 한 부분을 느끼고자 한다.
Ⅱ-1. 대한제
고종은 경우궁, 계동궁 등으로 이어지는 수모를 겪는다. 또한 을미사변 이후에는 세자와 함께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1897년 2월 25일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8월에 연호를 광무라 고치고, 10월에 국호를 대한, 왕을 황제라 칭한 후 황제즉위식을 갖는다. 대한제국의 황제
원구단(환구단), 사직단, 종묘, 문묘를 방문하기로 했다. 이들은 조선의 지배계급이 제사를 지내던 공간으로, 조선 통치의 또 다른 면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II. 답사
일반적으로 제사는 신을 불러들이는 의식과 신께서 즐기는 의식, 그리고 신을 보내드리는 의식으로 구성된다. 세세한 부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