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 견해가 양립한다. 그러나 신라와 같이 전쟁을 수행한 당은 국내 학계의 논의에서 제외되는 경향이 있다. 자국 중심의 해석은 중국 학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백제·고구려의 멸망은 당이 주도했으며, 신라는 부수적인 존재라는 가벼운 인식이다. 이기천, 「당의입장에서 본신라의 통일」, 『
통일의 논의를 이룰 수 있다는 관점으로 변화되었다. 지금까지 남북은 정치 경제적인 분야에서 많은 협력을 시도 해 왔다. 하지만 교육, 언어적 분야에서는 접근에 대한 논의조차 미흡했다. 이 점은 분명히 남북한 통일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발표 과제 및 연구를
바가 없었다. 조선역사가 출간된 바로 이듬해, 당시 일본에서 좌익활동에 종사하고 있던 이북만은 칼 마르크스의 소위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봉건제도의 동양적 형태라고 간주하는 입장에서 통일신라시대 이후를 봉건제사회로 규정하는 논문을 일본의 역사과학(1~4)에 발표했다. 당시 유물사관은
입장은 아니지만, 지금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적힌 기록이 부족하여 『수서』와 『구당서』, 『신당서』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고 당나라에 입장에서 기술된 역사서를 재해석하는 과정이 이미 적용된 상황인데, 굳이 당의입장에서 한국사를 해석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새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