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주가문으로 출가한 덕혜옹주의 결혼기념비 등이 있다.
<왼쪽 위부터 박재상 순국비, 바이린지, 역관사비, 최익현 영정(최익현 순국비는 본문 133쪽), 덕혜옹주와 대마도주의 사진, 덕혜옹주 결혼 기념비>
일제 강점기 한국인 2만 명 살아
섬 전체의 92%가 척박한 산악지형이고 농토는 3%도 안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 말은 즉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내가 불행하기에 행복을 계속해서 갈망하는 것이다. 책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에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는
(2) 영토 의식
청(淸)은 1660년대 만주지역을 자기네 민족의 발상지라고 하며 봉금하였다. 조선은 정묘호란, 병자호란에서 패전을 하여 청과 군신관계를 맺고,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만주 일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봉금령을 내렸다. 하지만 생활이 어려운 서민들은 간도로 가서 터전을 일구었다
대마도, 국학자료원, 2007, 15~24쪽.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에 수군 제도를 정비하고 강화하는 데 힘썼으며, 세종 1년에는 대마도 정벌에도 성공한다. 이후에도 왜인들에게 어장을 개방하는 등의 교린정책과 수군력 강화를 병행하는 등 끊임없이 해양 방어에 신경 썼다. 김기훈, 「조선전기 남
Ⅰ. 서론
인류의 음식 생활은 특정 역사적 단계의 문명 척도와 문화적 특징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특정 민족 문화중의 음식 문화 요소, 즉 민족 음식 생산과 생활 및 음식과 직간접적 연계가 있는 문화 요소를 배제한다면, 그 민족의 모습은 매우 기형적이고 상상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실상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