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씨정권과 급진개화파의 대립은 극에 이르렀다. 민씨정권을 대변하는 재정고문 뮐렌도르프는 惡貨를 주조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옥균 등은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김옥균의 차관 교섭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급진개화파의 정치적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일본과 맺은 조선 최초의 근대화 조약이자 불평등조약 (해안 측량권, 치외법권 허용).
1882
조·미 수호 통상 조약(朝·美 修好 通商 條約)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맺은 조약 (치외법권, 최혜국대우 규정).
1882
임오군란(壬午軍亂)
민씨 정권에 대한 도시 하층민의 불만과 별기군에 대한 차별로 인한 구식
대한 인식, 청국·일본에 대한 관점, 개혁을 둘러싼 방법론 등의 의견차이로 말미암아 변법개화파와 점차 사이가 벌어지는 경향을 보여왔고, 급기야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각자 판이한 노선의 행동을 취하였다.
정치적 당파
중요 인물
정치적 특징
급진개화파
(개화당)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서광
급진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김옥균, 박영효이며 온건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김윤식, 유길준이 있다. 한국철학사연구회,『한국철학사상사』(한울,1997). p.345
의 수장격인 인물이었다. 그는 1884년 개화파의 일원들과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 만에 청국 군대에 밀려나서 일본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
급진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김옥균, 박영효이며 온건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김윤식, 유길준이 있다. 한국철학사연구회,『한국철학사상사』(한울,1997). p.345
의 수장격인 인물이었다. 그는 1884년 개화파의 일원들과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 만에 청국 군대에 밀려나서 일본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