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한 새로운 사업으로 청년회는 편집부를 따로 두고 월간잡지 『개벽』을 창간하는 한편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어린이날’을 제정하는 등 전적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22년 교단의 주요지도자인 오지영․김봉국 등 천도교련합회의 일탈과 의암 손병희의 순도, 사회주의의 보급에
독립운동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정치단체 운동은 1904년 7월 일본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에 반대하여 설립된 보안회의 활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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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도마안중근의사의 연혁
안중근은 조선 왕조 말엽인 1879년 9월2일 황해도 해주읍 광석 동에서 태어났다. 안중근은 고
독립군을 때려잡던 조선인 출신의 일본군 (만주군), 나라 안팎의 항일 운동가를 염탐하던, 밀정일제 경찰을 대신하여 고문을 일삼던 조선인 악질 경찰, 항일운동가를 일제의 법으로 다스리던 조선인 판사와 검사들 식민지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제 세상을 만난듯 날뛰던 자들이다. 이들은 해방뒤 아무
한편 하와이 한인 사회를 발전시키던 박용만은 1913년 2월 갈 곳 없어 방황하던 이승만을 교육과 출판 사업에 힘써달라고 하와이로 초청했다. 뿐만 아니라 ≪신한국보≫를 통해 이승만을 “찬란하게 소개하여 일반 동포의 동정심을 환기”시킬 정도로 의형에 대한 그의 예우는 극진했다. 그러나 19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