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주의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신비적인 직관, 독일 관념론과 자연주의 철학의 영향이 엿보이는 철학적 형이상학적 통찰, 슬라브 학파 사상의 예술적인 전개 등을 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들의 활동 시기가 러시아에 전파되는 니체,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본격적으로 거론되는 것과도
대한 필요성, 삶의 인상주의적 이해, 그리고 시에 대한 관점의 혁신들이 강조되곤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들은 시인의 개성과 그 내부 세계의 풍경에 시선을 돌리게 되는데,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외부 세계의 가시적 풍경보다는 감춰진 인간의 심오한 의식과 초월적 세계가 지금의 현실세계를 보다
현실에 직면하려고 했으며, 정중한 허식을 타파하고 틀에 박힌 허위를 극복하여 사물의 진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19세기 중반의 러시아 음악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아 러시아 향토에 대한 애착심과 애국심, 민족의 우월감 등을 기반으로 한 국민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음악
세계를 동경하고 개인적인 충동과 경험을 중시하여 도덕성을 개의치 않고 더 내성적이고 탐미적으로 혹은 데카당 하게 되었다.
고갱이 상징주의의 리더로 떠오른 이유는 회화의 독자적인 언어인 형태와 선, 색채를 통해 인간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려고 했고 그런 점에서 그는 모더니즘의 선구자이자
대한 비판으로 본 것이나 낭만주의의 특성으로 개성적, 이상적, 신비적, 열정적, 자아적 성격을 지적한 것은 외국문학을 원론적으로 소개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김기진에게 있어 낭만주의는 하나의 비평상의 용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①의 로만틔시즘과 ②의 낭만주의는 동일한 대상을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