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파와 차별되는 분명한 정체성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분명한 이론적, 신학적 토대를 마련하고, 신앙적인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특정한 신조를 확정짓는다. 둘째로 성직자, 교사, 세속관리들은 이 신조를 새로운 규범으로서 관철시키고 널리 유포시키는 의무를 수행해나갔다. 세 번째로 교리
개 조문을 공개하여 종교개혁 심지에 불을 붙이게 되었다. 이 때 루터는 “옛 초대 교회시대보다 현재가 더욱 사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종교개혁의 의지를 굳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해에 그는 그가 성서학 박사(Holy Scripcture) 학위를 받았던 에르푸르트대학으로 돌아 왔으며, 그 후 비텐베르
I. 서 론
신앙의 멋진 사나이’ - 이 말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언제나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며 늘 ‘신앙의 시련’에서 세상의 만 가지 현상을 새롭게 피어나게 한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16C 종교개혁의 핵심인물인 마틴 루터는 교회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유
고위 성직자나 하위 성직자 역시 교황청보다 결코 낫지 않았다. 사제의 혼외관계는 너무나 만연해 있어서 ‘사제의 자녀’라는 것이 결코 기분을 상하게 하지 못했고, 수도원과 교회는 이러한 귀족자제들의 부양기관이 되기도 하였다. 교회는 성직자들의 경제적인 이윤도구가 될 위험에 처했다.
고위 성직자나 하위 성직자 역시 교황청보다 결코 낫지 않았다. 사제의 혼외관계는 너무나 만연해 있어서 ‘사제의 자녀’라는 것이 결코 기분을 상하게 하지 못했고, 수도원과 교회는 이러한 귀족자제들의 부양기관이 되기도 하였다. 교회는 성직자들의 경제적인 이윤도구가 될 위험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