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 마틴루터의 교육철학과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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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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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루터의 생애

2. 루터의 사상

2-1. 루터의 일반사상

2-2. 루터의 교육사상

3. 루터의 교육관

4. 루터의 영향

5. 참 고 자 료- 95개조 반박문

본문내용
1. 생 애

마틴 루터는 1483년 동부 독일의 작센주의 아이스레벤에서 광부인 아버지 한스와 어머니 마가레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루터는 만스펠드에서 초등교육을 받게 된다. 1501년, 루터는 옥캄(William Ockham)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고 당시 인문주의로 유명한 에르푸르트 대학에 입학하여 7자유학과와 법률을 배웠다. 그는 라틴 고전과 기독교 신학을 열심히 공부했으면서, 음악적 재능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정통으로 배웠고, 또한 그의 비판에까지 사고를 확대하였다. 루터는 문학부의 단계를 마치고 이를 심화하는 단계인 문학부 석사 과정도 마치게 되었다. 그 이후 법학을 공부하려 하였으나 일련의 사건(그의 바로 옆에 떨어진 벼락에서 가까스로 살아나게 된 다음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을 하게 됐다.)을 겪은 후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직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그의 나이 22세인 1505년에 그는 종교적 신비감을 체험하고 복종, 청빈, 순결의 서약 아래 아우구스티누스 교단에 속하는 에르푸르트 수도원에 들어갔다. 1510년부터 1511년 까지 그는 수도원의 수사로서 로마에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로마여행에서 목격한 부패와 테첼(Johan Tetzel)의 면죄부 판매는 그를 분격하게 하여 1517년 10월 31일, 95개 조문을 공개하여 종교개혁 심지에 불을 붙이게 되었다. 이 때 루터는 “옛 초대 교회시대보다 현재가 더욱 사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종교개혁의 의지를 굳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해에 그는 그가 성서학 박사(Holy Scripcture) 학위를 받았던 에르푸르트대학으로 돌아 왔으며, 그 후 비텐베르그 대학의 신학교수가 되었다. 이 때에 루터를 분노하게 한 것은 교회의 면죄부 판매라는 타락상이었다. 1517년 면죄부판매 대행자인 테첼(Johan Tetzel) 수사가 교황에 의하여 포고된 면죄부를 팔기 위하여 삭소니 지방에 나타나자, 이에 대항하여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95개 조문을 공개하여 본격적인 종교개혁의 불을 댕기게 된 것이다. 95개 조문의 주된 내용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우리의 주요,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땅위에서 믿는 자들의 전생에는 참회의 연속이 되어야 함을 요구하셨다. 가난한 자를 도우고, 궁핍한 자에게 꾸어주는 사람은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행하는 것임을 기독교인에게 가르쳐야 한다. 면죄부에 의하여 구원받는다고 믿는 것은 헛된 신앙이다. 비록 교황 자신이 자기의 영혼을 걸로 그 정당성을 보증하려고 해도 그것은 헛된 일이다.
이러한 95개조를 사람들에게 공개함으로 해서 면죄부 판매는 급격히 줄어들게 되어, 교회는 분격하여 1520년 교황 레오 10세가 루터를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반항하여 루터는 대학의 열광적인 학생들 앞에서 교황의 교서를 불태워 버렸다. 이듬해 새로이 왕위를 오른 신성로마황제 찰스(Charles) 5세는 루터를 설득하기 위하여 소환하였는데,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한결같고 인간의 양심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교황에게 강력히 주장하고 황제의 설득에 불응하였다. 그러자 그를 이단자로 선고하고 법률상 보호를 박탈한 것이다. 그리하여 1525-34년 사이 그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발트부르그의 프레드릭 3세의 성내에 피신하여 그곳에 머물면서 그는 성서의 독일어번역을 했다. 이것은 일상용어로 표현되어 있어서 독해하기가 쉬워서 기독교의 참된 정신을 보급하는 것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