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 전기의 발전을 계승하여 청대 중엽에 대단히 성행하여 홍승(洪昇 : 1645-1704)의 『장생전(長生殿), 공상임(孔尙任 : 1648-1718)의 『도화선(桃花扇)』과 같은 명작들이 나왔다. 그러나 그 후로는 새로운 곡조인 피황조(皮黃調)가 유행함에 따라 곤강에 의거한 전기는 급속히 쇠퇴하고 여러 지방희(地方戱
문학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16세기에 당시풍(唐詩風)이 시단을 풍미하였던 것에 대한 비판으로 17세기 초에는 명대(明代)의 진한고문풍(秦漢古文風)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 풍조 역시 당송고문론(唐宋古文論)이 제기되면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주로 노론계(老論系) 문인들에 의해 당시(唐詩)는 물론
명대에 성리학은 더욱 융성하였다. 성리학은 그 자체로 완벽한 사상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거스르는 새로운 사상의 출현은 기대하기 어려운 듯 보였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명나라 중엽, 왕양명이 나타나 양명학(陽明學)을 일으켰다.
2. ‘심즉리’설의 탄생
<심즉리>설이란 '
문학 특징·작품소개
1.시경(詩經)
시경이란 무엇인가?
-《시경》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으로서 중국문학 자체의 출발을 이룬다. 《시경》을 내용에 따라 분류하면 ‘육의’로 이루어지는데 ‘육의’는 ‘풍(風)․아(雅)․송(頌)․부(賦)․비(比)․흥(興)’을 말한다. ‘풍(
명대 사람들은 흔히 <남희(南戱)>를 이속(俚俗)하다 하여 매우 경시하고, 청대(淸代)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송대(宋代)에 희문이 있었다는 사실 조차도 잊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송(宋) 희문(戱文)중 완전한 작품이 하나도 전해지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전기(傳奇)의 성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