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위한 예술' 개념은 극장예술로서의 발레를 미학적으로 분리시키고 그것을 최상의 위치에 올려놓음으로써 무용이 더이상 다른 예술 분양에 예속된 것으로 취급받지 않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이 발레를 하나의 독립된 예술로 보려는 사회적 인식은 낭만발레 시대의 극장예술비평가들의 비
대한 증오가 3년 동안의 무자비한 전쟁으로 격화되어 다시 터져 나온 것이었다. 이 때 피카소는 ‘공식적인’ 입체주의자들 사이에서 피카소가 ‘입체주의를 버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굉장히 센세이션한 사건 중 하나였다. 하지만 피카소는 자신이 예술의 가능성을 넓혔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외
무용인류학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는 비평가들은 케플러가 거부하고 있는 관점들을 정기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란시스 스파숏(Francis Sparshott)은 1995년에 발간한 그의 책 『계산된 보폭(A Measured Pace)』에서 ꡒ무용수들은 그 사회 전체를 대표해서 무용을 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지적인
발레는 오락이었다.. 그것은 계속 신비로워지고 있었다."(Jane Winearls , 1990)
이렇듯 오락적이고 신비로움을 추구하며 인간의 낭만적인 정서를 무대에서 실현 시켰던 발레는 20세기의 인간의 삶을 충족시킬 수 없는 한계에 도달 하였으며 낭만주의의 쇠퇴와 모더니즘의 새로운 조류 아래서 예술발레의
무용비평을 하나의 전문적인 직업으로 정착시켰다. 마틴은 미국 대중에게 현대무용에 대한 자신의 이상을 표명하기 시작하여 당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고 영향력 있는 무용비평가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18,19세기를 거쳐 미국 저널리즘의 성장이 가속화되고 예술에 대한 대중적인 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