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데 매진하게 되어, 4년간 무려 30여편의 소설을 탈고하는 천재성을 발휘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김유정 선생은 등단 이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면서, 1937년 3월 29일 가난과 병고 속에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봄봄, 동백꽃, 소낙비, 만무방, 땡볕, 따라지 등 농민들의, 때로
Ⅰ. 개요
김유정은 문학작품의 창작을 <제작>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김유정은 문학 작품을 “근대식으로 제작(製作)되어진 한덩어리의 예술품(藝術品)”이라고 지적하는데, 이러한 <제작>으로서의 작품 창작의 파악은, 당대 <<구인회>>와 상통하는 것이었다. <<구인회>>의 공통된 특질로, 문학을 기호의
소설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의 서양문화 수용은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과 조선의 전근대적 모순을 혁파하려는 절실하고도 주체적인 측면이 강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점차 서양의 문학이론에 근거한 소설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근대소설(近代小說)의 개념
김유정은 당대 농민들이 ‘만무방’이 될 수밖에 없는 근원적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사건의 반어를 일으키어 현실을 형상화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농촌의 한가로운 풍경과 실제 농촌의 피폐한 삶을 대립시켜 암울한 농촌 상을 부각시킨 것 외에도 소설 속에는 많은 아이러니 한 상황들을 존재하고 있
만무방」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일탈된 행동을 하는 농민들을 그리면서도 그들의 타락상이 인간성의 타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모순에서 기인된 것임을 보여주는 경우이다. 김유정이라는 작가가 갖는 한국문학사의 위상으로 볼 때 단순히 그의 작품 뿐 아니라 그의 생애와 이력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