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928-29년
파리에서 에른스트, 마그리트, 엘뤼아르 등과 만나며 초현실주의 그룹에 합류했다. 까다께스로 엘뤼아르와 갈라를 방문하러 갔을 때, 달리는 첫 눈에 그녀를 자신의 뮤즈로 받아들였다. 서로에게 매료된 이들은 결코 헤어지지 않을 것임을 결심했다. 부뉴엘과 제작한 영화<안달루시아의
초현실주의자, 무신론자
- 영화 역사상 가장 논쟁적이고 파격적인 감독으로 평가받음
카톨리계 학교에 입학. 이 무렵부터 밀로의 비너스를 점토로 만드는 등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기 시작함
* 이런 살바도르달리의 천재성을 말해주는 일화 – 밀레의 <만종>
어린 달리는 밀레
초현실주의자들이 무의식의 세계를 형상화한다며 정신분석학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나타내었다. 즉 그는 초현실주의자를 기회주의자처럼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정신분석학의 내용과 용어를 사용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살바도르달리는 비
초현실주의의 갖가지 시도는, 현실적인영상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한 것 등을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이 20세기 특유의 환상예술을 발흥시키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회모순을 비판하거나, 현실의 본질을 인간내부의 순수 상상력으로 표현한 작품이 많다.
초현실주의의 표현기
작품에 《두려움》이 있다.
탕기는 초현실주의 화가 가운데 가장 특이한 세계를 보여준 화가이다. 처음엔 데 키리코풍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 후에 데 키리코와는 다른 소재로 독특 한 화풍을 보이나 데 키리코의 진정한 후계자는 탕기와 그 뒤 달리로 이어진다.
그는 1924년부터 본격적인 화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