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序論)
1941년에 발간된 미당의 첫 시집《화사집》, <자화상>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 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호는 未堂(미당). 전북 고창에서 출생. 어릴 때 한학을 배웠으며, 중앙고보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전북고창고보에서 수학하였다. 1935년에 시 <자화상>을 시건설에 처음 발표했으며, 1936년에 시 <벽>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 해에 김광균, 김동리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
미당, 그는 누 구 인 가
『자화상』 (1941, 제 1시집 “화사집”)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
미당 논쟁’으로 일컫는 서정주의 친일문학과 관련된 문제제기들이 친일담론 중에서도 가장 문제적인 이유는 그것이 바로 이런 판단의 갈림길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의 정부’, ‘백년 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시인, ‘이 나라 시인부족의 족장’ 등의 찬사가 아니더라도,
미당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에서 출생
생전에 15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약 70년의 창작 활동기간 동안 1000여편의 시들을 발표
주요 작품
<자화상>, <귀촉도>, <국화 옆에서>, <동천> 등
그의 시는 뚜렷한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거치는데 초기의 원색적이고 강렬한 관능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