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작품을 발표했던 행적을 비롯하여 두루 노출된 균열의 흔적은 시인의 기본적 인격과 판단력마저 의심케 할 정도로 그 시적 위용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문제는 이런 균열과 그의 작품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가 매우 상반되고 복잡하여 그의 작품의 가치에 대해 논하는 것 역시 혼란에 빠지기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여전히 논의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전개는『화사집』에 실린 초기시 <대낮>, <단편>과『매일신보』에 발표되었던 친일시 <마쓰이오장송가>를 살펴봄으로써 미당작품의 양면성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오장마쓰이송가」는 서정주의 대표적 친일시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이에 대한 많은 평가가 있었다. 때문에 본고에서는 당시 서정주의 생애와 시대상황, 시적 세계들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사를 논의하는 과정을 취한다. 그의 기존 연구가 상당히 방대하기에 이는 상당히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이
작품이 문학교육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우선 그의 작품을 문학교육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은 그의 작품은 문학사의 대가로 인정될 만큼 가치롭고 그를 빼놓고서는 한국 시의 발전을 논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반면 그의 행적이 친일과 독재정권과 연계된
한국어의 공적 사용을 금지하였다. 이에 우리 문단을 대변하던 순수 문예지들이 폐간되고 다수의 친일 잡지들이 창간되었다. 서정주가 친일 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이 무렵이다. 1944년 민족주의적 성격을 띤 연극을 하던 몇몇의 청년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죄목으로 3개월간 감금된 뒤 풀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