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과정이 상당기간 지체되거나 아예 무산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많은 나라의 경우 공기업민영화가 사후적으로 정부와 공공부문 노조들간의 기존 노사관계 구도에 대해 적잖은 변화를 초래하였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의 공기업의 민영화는 1960년대 말
관계와 상충하면서 적극적으로 경제과정에 개입하는 외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일단 공공성이라는 외형을 갖는다. 물론 이때의 공공성은 어디까지나 자본의 입장에서의 공공성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에서 공공성 혹은 공공부문이라는 규정의 등장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추진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경제력 집중에 대한 우려와 중시상황, 관계부처와 공기업노사 등 이해당사자들의 반발 등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1995년의 한국통신 사태는 민영화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안이 반영된 것이었다.
민영화가 지지부진하게된 데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재벌에 대한 특
민영화 정책의 추진에 있어서 각 단계별로 여러 가지 방식을 선택하여 추진하였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장애물 극복을 위한 효과적인 매각 방식과 정책 개발 능력의 보완하는데는 한계가 있어, 민영화 방식의 경직성을 지적할 수 있다.
민영화 제1단계 경우, 주식매각과 현물출자의 복합적인 방법을
2) 노사관계 개요
① 사업장 노사 개요
두산중공업은 1962년 설립된 발전, 담수설비 제조업체로서 공기업이었던 한국중공업이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2000년 12월12일 두산에 매각됨에 따라 민간기업으로 전환한 회사이다.
두산중공업은 민영화 이후 경쟁력과 효율성을 강화하면서 2001년부터 시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