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공동체도 해체된 문화유산이 되었다. 서남해 도서연안지역에는 민요공동체의 존재가 확연히 확인되고 있다. 과거의 활동을 증언하는 구술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또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민요공동체가 존재한다. 신안군 장산면 공수리, 진도군 지산면 소포의 노래방이 그것이다. 노래방이란 명칭
가. 민요의 개념
민요는 민중에 의하여 창작되어 민중에 의하여 전승되어 오는 노래를 말한다. 민요의 창작자는 개인이거나 어떤 집단이거나 문제되지 않는다. 혹 최초의 어떤 한 사람이 창작하였다손 치더라도 민중의 공감을 받아 노래로 불려질 때만 민요로서 존립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작자
지역 촌로들 중에 이것들은 더러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열사가가 꽤나 널리 퍼져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열사가의 창작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들리는 바로는 박동실, 조상선 등의 명창이 지어냈으리라는 소문이 있다. 공교롭게도 박동실과 조상선은 분단 격변기에 월북
민요)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생긴 신민요이며, 굿거리장단으로 부른다. 본래 무당들이 굿을 할 때 부르던 무가(巫歌) 《창부타령》에서 전화(轉化)된 노래로, 일제강점기 때는 피압박 민족의 비애와 분노를 담은 애절한 호소의 노래가 되기도 하였다. 후렴인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난실로 내가
민중행사로 바뀐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 참고 :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칼, 옥쇄, 동경(거울), (왕관장식)곡옥(태아, 재생의 의미)
● 함경지방의 돈돌라리(10~20년대 창작민요)
- 인민의 애국정신과 수련의 국제주의를 수용하기 위해 불렀음
- 돈돌라리의 어원은 모름
- 노래의 구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