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가 작동한 것임을 말하고 있으며 이를 박정희의 독재에 대비하고 있다.
나치는 인민 주권론에서 기원하는 민중의자기 숭배를 민족에 대한 숭배로 전환시킴으로써 민중에 대한 헤게모니와 파시스트 독재의 민중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정치’의 다양한 장치들 즉 민족주의적
박정희 기념관 건립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문민정부의 무능함에 대해 반사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향수가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하였고 그와 관계되어 그의 후광을 입은 인물들(김종필, 박근혜)이 우리 정치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박정희 신드롬은 더욱 의미를 갖는다. 박정권이 독재는 했지만
장준하가 민족주의자가 된 것은 학도병으로서 일본군 내에서의 민족적인 차별을 받았고, 자신이 떳떳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민족이 독립해야만 한다는 생각 속에서 자신과 민족을 일체시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장준하의 삶은 민족의 삶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갖게 되었고, 그의 정신 속에서
박정희 체제는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정서를 이용하였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많은 민족주의 담론을 생산. 실천하였다. 그런데 이런 민족주의 담론에는 박정희 체제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담겨있으며, 그 내용은 시기에 따라 변화하였다. 그 시기를 크게 ‘국가 재건기’
3) 일제의 식민지 문화론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 사업으로 진행된 근대화는 식민지 사람들의 자발적인 요구나 자율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일제는 그들의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위하여 근대화 이념을 만들어내고, 강제로 주입시켰다. 일제의 식민지 문화론은 표면적으로 가부장적 온정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