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시키기 위한 일정수준의 자본의 축적을 국가가 강제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자본의 지속적 축적을 위한 기반시설 등의 건설이었고 이것은 어떤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건 간에 강력한 관료와 국가권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박정희정권은 이러한 반주변부로의 도약에 필요한 요건들을 충족시키
,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특히나 경제 발전에 따른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 빈부격차의 심화, 그리고 의존적 경제구조 형성은 박 정권이 몰락한 이후에도 지속되어 한국 경제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었다.
파이만 키우면 그만?・・・성장의 그늘
개발이 국가 주도로 본격화 되면서 집권 여당은 많은 정치자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야당의 물질적 기반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동원할 수 있는 정치자금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박정희정권은 정치자금을 야당 의원들에게 일정부분 나누어 주면서 의원들을 매수하거나 통제했고 이는
국가 재건 최고 회의를 구성하여, 반공 강화와 민생 안정 등을 표방한 혁명 공약을 발표하고 군정을 실시하였다. 그들은 민정 복귀의 약속을 외면한 채 헌법을 개정하여 정권을 다시 장악하였다(1963).
박정희 정부는 조국 근대화 실현을 국정의 주요 목표로 삼고, 경제 개발 정책을 추진하면서, 일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