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근대사에서의 반공주의
그간 한국 근대사에서의 반공주의는 단순히 ‘사회주의는 틀렸다’ 수준이 아닌, 파쇼적 반공주의, 즉 극우적인 성격의 반공주의로 나타나왔다. 친일파들이 대통령이 될 정도로 지배층의 출신이 반민족적이었고, 자신들의 입지가 허술했던 우리나라의 지배층들은 바
미군기지의 문제이지만 그에 앞서 우리는 한미동맹의 시작과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냉전구조의 세계적 확대는 20세기 개인, 집단, 사회 그리고 국가의 행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가운데에서 주권국가의 차원에 나타난 두드러진 영향들 중 하나가 미국과 소련이 각각 주
주한미군의 철수가 끝난 뒤에도 남한에 공산주의 방벽을 세우겠다는 계획이었다.
무장대에 대한 막바지 소탕작전을 벌인 끝에 4월 9일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제주도를 방문한 이승만은 ‘게릴라에 대한 정열적이고 성공적인 진압’을 한 유재흥 대령과 경찰, 민간기관을 격려했다.
무초는 같은 날
Ⅰ. 서론
북한은 과거 거의 일관되게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때때로 몇 몇 관리들이 사견임을 조건으로 주한미군의 긍정적인 역할을 제시하는 이중적인 입장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남한에 비하여 국력이 급격히 쇠하면서 미국의 경제적, 외교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북한으
주한미군에 관해서도 적지 않은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적어도 2015-2020년까지 또는 한반도가 통일된 뒤에도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싶어하지만, 중국은 조만간 또는 늦어도 한반도가 통일되기 전에 주한미군이 철수되기를 바랄 것이다.
한편, 중국이 지금의 경제 성장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