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호로 삼았다. 율곡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서너 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깊은 생각과 문학적 자질을 익혀나갔다. 하지만 스승이자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죽음은 소년 율곡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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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율곡 이이의 교육사상
1) 교육의 목표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사상은 지금 우리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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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퇴계 이황의 교육사상
1) 교육목적
퇴계에 의하면 교육은 윤리를 밝히는 것을 근본을 삼는다고 하였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학문을 하는 것이라면 학문을 하는 목적은 곧바로 윤리 도덕을 밝히 아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퇴계는 학문의
수찬이 되었으며, 부친상을 당해 집상 중이던 시기에 <성설城設>을 저작하여 수원의 화성을 축조할 설계도를 정조에게 바쳤다. 33세에는 홍무노간 교리라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벼슬에 오르고 암행어사에 발탁되어 경기도 북부지방 네 고을을 염찰하여 탐관오리들을 징치하는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대로 실용성을 더해 현실정치에 도움을 주는 학문이라고 보여진다. 특히 실학의 집대성자로서 정약용의 학문은 오늘날 왜곡과 편견으로 점철된 조선후기 지성계를 조망하는데 찬란한 빛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 사상사에 있어 실학이라는 하나의 사조를 살펴보기 위해 그의 학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