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양쪽 측면- 각기 한 면에 4구씩의 주악천(奏樂天;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을 돋을새김해서 전면의 아미타삼존상을 찬탄하게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백제 음악에 관한 사료는 고구려, 신라 음악 관련 사료에 비해 부족하다. 하지만 계유명아미타삼존불비상에는 요고(腰鼓), 금(琴), 젓대(笛), 소(簫), 생(
비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앞면과 왼쪽 측면 일부만 읽을 수 있는 상태이다. 5세기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1행 23자로, 앞면은 10행 ․ 좌측면은 7행 ․ 우측면은 6행 ․ 뒷면은 9행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뒷면과 우측면은 마모가 심하여 거의 알아 볼 수 없다.
백제 시대에는 웅진(熊津), 통일신라 시대에는 웅주(熊州), 고려 시대 이후에는 공주로 불렀다. 이외에 웅천(熊川) · 공산(公山)이라는 지명도 사용되었다. 백제 시대의 웅진 지명이 나타나는 대표적 사례는 삼국회맹지 공주 취리산(就利山)에 대해 언급한 『삼국사기』의 "문무왕은 당사(唐使) 유인원(
신라에 굴복해야만 했는지 수업을 통해 공부하게 되면서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의문이었다.
그래서 고구려가 멸망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며 또한 고구려뿐만아니라 강성했던 백제가 무너진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수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몇 가지 커다란 요인으로 간략하게나마 알